글
어느 날...
꽤 유명한 학자를 찾아가 질문을 하였다.
"사람은 왜 사는 겁니까?"
"죽기위해 산다네."
"그럼 왜 사람들은 죽음을 거부하고 멀어지려 하는 겁니까?"
"죽음 뒤엔 명계로 가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벌을 받게 된다네. 물론 벌은 자신의 영혼이
받게 되지. 영혼은 자신이 벌을 받을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에 이를 거부하려 들지."
"영혼이 죽음을 거부하는 겁니까?"
"어차피 육신이란 영혼이 움직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법. 주가 되는 영혼이 두려워하는데
그 보조인 육신 또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게 당연한것 아니겠는가?"
"그럼 왜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먹고 잠을 자며, 일을 하고 사람을 사귀고,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며, 하나의 삶을 살아가는 겁니까?"
"그 순간을,
죽기 전 그 짦은 시간만이라도 자유라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일세.
죽음 뒤 찾아오는 건 많지않다네.
벌이 없다면 그에게 찾아오는 건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지.
그 무엇도 보이지도 않고 그 누구와도 말할 수 없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
그 시간에 맞이할 두려움과 고립감, 외로움과 고독함, 답답함과 괴로움.
그런 감정들이 반복되는 공포만이 있지.
그 기다긴 시간은 다시 태어나는, 즉 환생을 하는 순간에 벗어날 수 있다네.
죄와 벌의 정도에 따라 모두가 받게되는 형벌이지. 착한 자라도 이 형벌은 벗어날 수 없다네.
왜 종족마다 다르지만 어미의 뱃속이나 알속에서 일정기간 동안 지내지 않는가?
그건 죽음 후 찾아왔던 그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고 잊기 위한 시간이라네.
새로 얻게된 도구, 육신에 영혼이 깃들고 적응하기 위해서이지.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걸 알게된 영혼이 무엇을 하겠는가?
당연히 삶을 보다 깊게 느끼고 싶겠지.
그렇기에 그들은 무언가를 먹는 재미를 알고 편안한 잠을 바라며
하고자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와 마음을 나누며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가족을 만드는
하나의 자유로운 삶을 바라는 걸세."
"그럼 그런 삶이 아닌 악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는겁니까?"
"기다긴 시간의 고통을 잊지못한 자들이지. 불쌍한 이들이야.
그들은 그 기나긴 시간동안 느낀 고통을 잊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을 다른 이들에게도 퍼트리려는 걸세.
악하다면 악하고 불쌍하다면 불쌍한 이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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