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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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배경과 그 곳에 난 밝지만 좁은 길
그 위를 한 어린 소년이 순수한 웃음을 머금은 채
힘차게 달리고 있다.
힘들고 지칠만도 한대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에
행복해하는 소년
한참을 달리던 소년은
돌에 걸린걸까 아니면 지쳐 넘어진걸까
몸이 앞으로 기울며 쓰러진다.
그대로 누워있던 소년은
아플 것임에도
눈물보다는 미소를 머금은 채
씩씩하게 일어난다.
자리에 멈춰서서
옷에 묻은 먼지를 털던 소년
그제야 주변의 광경을 바라본다.
어두운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것도 없는 앞과 뒤의 길을 바라본다.
밝은 길만을 바라보며 걷다가
멈춰서자 보이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에
두려움을 느낀걸까 외로움을 느낀걸까?
그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감싸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한다.
"녀석, 천천히 뛰어야지."
순간 소년의 어깨에 올려지는 누군가의 손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람도 잠시
소년은 주름살이 많지만
인자한 웃음을 띈 할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
어느새 울음도 두려움도 가신 채 일어난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자신의 옷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어주고
혹 어디 다치진 않았을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걱정해주는 할아버지를 보며
소년은 미소짓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떡이고
할아버지도 그런 소년은 보며 미소짓는다.
할아버지와 말없이 바라보던 소년은 용기를 얻은 듯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곤 앞으로 달려나가고
할아버지는 뒤에 남아 그런 손자의 모습을
따뜻한 눈길로 끝까지 바라본다.
앞으로 달려가는 소년의 옷이
유치원복에서 교복으로 다시 정장을 입는다.
서서히 성장해 나아가고,
소년의 얼굴엔 슬픔, 기쁨, 행복과 분노가 지나가지만
여전히 소년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앞으로 달려나간다.
얼마나 그렇게 달렸을까
앞에 보이는 누군가의 굽어있는 등을 발견한 청년
이전에는 크게 느껴지고
언제나 든든해 보이던 등과 달리
이제는 굽어져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등의 모습에
소년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는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청년은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중년의 모습에 놀라
그를 부축한다.
"허허.. 내가 너에게 짐이 되는거 같구나."
아버지....
어느새 이리 늙으셨을까....
"언제 이렇게 컷을꼬... 장하구나."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부자.
희끗하던 아버지의 흰머리가 완전한 백발이 되자
청년은 일어나 아버지에게 인사드린다.
가만히 앉아 자신을 인자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
청년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때고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길을 향해 달려나간다.
외롭고 힘든 길을 달려나가는 청년
힘차게 나아가던 발걸음은 서서히 느려지고
힘이 넘치던 모은 여기저기 조금씩 떨려온다.
검게 물들어 있던 머리에 하나둘 흰머리가 나고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자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그러게 무리하지 마시라니깐! 아버지도 이젠 늙으셨어요."
순간 그의 몸을 부축하는 누군가의 손
잠시 숨을 고르고 뒤를 바라보자 보이는 아들의 얼굴
작고 여리던 아기가 어느새 자라나
장성하게 커선 나를 돕고 있구나.
녀석... 어느새 이렇게 큰건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고
부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부자
더이상 힘이 없어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 반,
홀로 나아가며 손을 흔드는 아들의 모습에 뿌듯함 반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몸을 자리에 앉히며
지친 몸을 쉬게하고
허옇게 샌 백발머리를 타고 흐르는 땀을 식힌다.
수많은 시간을 걸어
지나온 길을 바라본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길만이 보이던 뒤편에 작은 점이 생겨나 달려오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달려오는 녀석...
허허... 지 아비와 어미를 쏙빼닯앗구나.
힘들탠대도 꿋꿋하게 걸어오는 손주에
어느새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미소가 생기고
재롱을 보듯이 어느새 응원하고 있다.
순간 무에 걸린 것인지 손주가 넘어지자
더이상 움직일 힘도 없던 그의 몸에 힘이 생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주에게 다가가고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손주를 일으킨다
놀란 손주 얼굴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짓자
손주도 어느새 다시 밝게 웃어보인다.
"천천히 뛰어야지,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몸에 뭍은 흙을 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손주는 다시 힘을 얻은 듯, 용기를 얻은 듯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앞으로 달려나가고
할아버지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손주가, 아들이 달려나간 길을 바라보고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이 걸어온,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어오신 길을 바라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만들어두신 길,
그리고 자신이 걸어오고, 자신의 아들이 개척해나가는 길
그 길을 뛰어가는 손주의 모습이 더이상 보이지 않자
바닥에 힘없이 몸을 뉘어 눈을 감는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쳐지고 평안한 잠에 빠져든다.
언제 깰지모를, 다신 깨지 못할 평안의 꿈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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