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늘도 그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매일 저를 찾아와 먹을 것을 줍니다.
그럴 때면 저는 예전 기억에 따라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먹어’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제야 저는 그가 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음식을 뺏어갈지 모르니깐.
오늘도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쓰다듬기도 하고 잠시 같아 앉아있기도 합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면 저는 가만히 있습니다.
움직이면 혼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가 저의 옆에 앉으면 주변을 경계합니다.
혹시 누군가 그를 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오늘도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저의 앞에 음식을 두고 가만히 웃으며 바라봅니다.
배가 고프지만 저는 가만히 있습니다. 명령 없이 움직이면 안 되니깐.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그는 그저 바라보기만 합니다.
더 이상 배고픔을 기다리지 못한 저는 결국 우는 소리를 내며 그가 명령해주길 바랍니다.
그는 조금 더 다가와 음식을 저를 향해 밉니다. 저는 몸을 움츠립니다.
그가 다가오고 저는 움츠러들고.
바로 코앞까지 온 음식에 순간 이성을 잃고 입을 가져갑니다.
순간 맞는다는 생각과 손을 드는 그의 모습에 몸을 움츠립니다.
그리고 저를 쓰다듬는 손길에 고개를 들고, 들려오는 목소리 ‘잘했어’.
놀라 그를 바라보자 저를 보며 웃는 그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뜁니다.
오늘도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그가 보이자 저는 그에게 달려가 몸을 비비고 그는 웃으며 저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그가 그릇에 담아둔 음식을 먹고, 그의 옆에 앉아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그가 던지는 공을 물어와 건네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저는 기쁩니다.
주변이 어두워진 시간.
헤어지려던 그는 뒤로 돌아 저에게 다가오더니 저의 발을 잡습니다.
그가 손을 놓자 저의 발에는 푸른색의 끝이 묶여있습니다.
저를 보며 웃어준 그 사람은 떠나갔습니다.
오늘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못 오는 걸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기다립니다. 그 사람과 만나길 바라며.
혹시 제가 떠난 사이 그 사람이 올지도 모르니깐.
오늘도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배가 고프지만 저는 기다립니다. 이곳을 떠나면 안 되니깐.
졸리면 잠이 들고 배가 고프면 참고 심심하면 주변을 둘러보고.
저는 기다립니다.
언제까지고.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듭니다.
작은 공. 그 사람이 멀리 던지고 제가 물어오던 공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향해 달려갑니다. 계속 굴러가는 공.
멀리서 그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를 보며 웃는 그 사람이.
제가 다가가자 점점 흐릿해지는 그 사람.
그를 향해 달려가자 그 사람은 쓰러지며 사라집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속으로. 그 사람은 저와 비슷해 보입니다.
여기저기 더럽고 이상한 냄새도 나고. 하지만 친숙합니다.
그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쓰러진 곳이니깐.
그에게 다가가 몸을 눕힙니다.
차가운 그의 몸에 붙어 체온을 나눕니다.
그리고 천천히 잠이 듭니다. 천천히 눈을 감으며.
(뒷 이야기)
“하하. 너는 어디서 온 아이니?”
오랜만에 개운한 몸으로 잠에서 깬 사내는 자신의 옆에 누워있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개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고 사내는 그 모습에도 재밌는 듯 웃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키우는 개는 아닌가 이리저리 둘러보던 사내는 앞발에 묶여있는 푸른 발목띠와
그곳에 새겨진 문양을 보곤 웃으며 자신의 손목을 개에게 보여주었다.
“너도 천사님을 만났나보구나!”
그의 손목에는 개가 차고 있는 띠와 동일한 색과 문양을 한 팔찌가 있었고
이를 알아본 듯 개도 손목에 얼굴을 비비며 반응했다.
“천사님께서 너와 나를 이어주신 것 같구나.”
그런 개를 가만히 쓰다듬어둔 사내는 슬픈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다시 웃는 얼굴로 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와 함께 하겠니? 천사님에 비해 부족하겠지만.”
그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개는 힘차게 짖으며 답했고, 그에 사내는 웃으며 다시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계관은 현대의 지구일 것인가
아니면 머나먼 미래의 황폐화된 지구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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