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와... 예쁘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새하얀 카메라.
때 묻지 않은 모습과 특별 제작되어 수량이 한정되어있다는 말에
나는 다른 물건을 사려고 모아둔 용돈을 털어 구매했다.
뭐...
전용 필름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잠깐 망설였지만...
카메라를 구매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매만지고 매만지며 나의 마음을 뺏어간 사진기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계속 매만졌다.
집으로 돌아와 왠 사진기냐며 따라붙어
구경하려는 동생들을 물리치고 들어온 방.
필름을 넣고 방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무엇을 먼저 찍을까?
어디를 찍을까?
어떻게 하면 이 녀석에 어울리는 작품을 찍을 수 있을까?
아니.
사실 그런 고민은 없었다.
이 녀석으로 찍으면 무엇이든 좋은 작품이 나올 태니깐.
그리고, 내 주변엔 좋은 모델들이 많으니깐.
사진을 구매한 날은 내가 사는 방을 찍었다.
방으로 들어오는 문부터 시작해서,
내가 앉는 의자와 공부하는 책상, 그 위의 책.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이 보이는 창문.
동생들이 그린 벽의 낙서들.
방을 나와서는 내가 사는 집들을 찍었다.
담벼락과 그 아래 핀 꽃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부엌, 동생들이 지내는 방, 부모님방 등등.
그리고 내 소중한 가족들.
무뚝뚝하지만 내가 힘들 때면 말없이 다가오시는 아버지.
가끔 잔소리가 심하시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위하는 어머니.
장난끼 많지만 눈물도 많은 동생들.
늦은 밤까지 찍다가 아버지 호통에 놀라 잠이 든 밤.
그날 밤에 찍은 사진들은 아직도 내 1호 앨범에 고이 모셔져있다.
아침이 되어 보다 다양한 사진들을 찍으러 다녔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담부터 시작해서 운동장, 교실, 공터 등등.
그러면서 마주하는 동기들과 사진도 찍고,
선배와 후배들과도 신나서 찍고. 교수님은... 조금 어색했지만...
학교를 나서서는 마을을 주제로 찍으러 다녔다.
어릴 때 뛰어다녔던 골목길부터 가게들이 몰린 상가,
자주 이용하던 가게들도 찍고, 길거리도 찍고.
동네 친구는 기본이고 그 부모님과 가족 분들.
그리고 단골집 주인아저씨, 아주머니.
그러면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
너무 즐겁게 사진을 찍은 걸까?
생각보다 빠르게 소진된 필름에 추가 구매를 위해 가게를 들렀고,
한정 수량에 맞춰 필름 또한 얼마 뒤 제작이 끊긴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부랴부랴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소비하여
마을의 가게부터 시작해서 자전거를 빌려 다른 마을까지 다니며
카메라 전용 필름들을 구매하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방 한 켠은 전용 필름통들로 가려지다시피 했고,
이를 발견한 부모님과 이게 무어냐며 잠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 와서도 그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잃을지 모를 소중한 추억이 담길 물건들이니깐.
더 이상 필름을 구할 수 없기에 특별한 날만 골라서 사진을 찍었다.
학교 MT, 가족들간의 행사나 모임.
친구들과의 여행,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들.
하나의 필름이 수많은 사진이 된다.
수많은 사진은 하나의 앨범이 된다.
이 하나의 앨범은 나의 소중한 추억이 된다.
하나씩 줄어드는 필름.
하나씩 늘어나는 추억.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마지막 하나의 필름이 남아있었다.
소중한 필름이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나의 소중한 것들을 담았다.
먼저 떠나가신 부모님의 묘.
자글자글한 주름사이로 개구 장이의 모습이 보이는 나의 동생들.
가끔 막걸리를 마시며 추억을 얘기하는 친우들.
이제는 볼 수 없는 나의 사랑.
나의 옆에서 나를 바라보는 우리의 아이들.
나의 아이에게 카메라를 건네고
아이는 울면서 카메라를 받아든다.
그리고 셔터를 내린다.
밝은 빛이 눈을 가린다.
빛이 가시자 보이는 나의 마지막 앨범.
환히 웃으며 앨범을 향해 다가간다.
옛날에는 사진찍히는 것보다는 찍는 걸 꽤나 좋아했는데....
위의 글처럼 잃어버릴지 모를 추억들과 그때의 감성들을 담아둘 수 있으니.
뭐, 지금은 귀차니즘으로 안하지만.....
'창작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폐인 (0) | 2017.03.06 |
---|---|
[단편] 꿈 꿔온 집 (0) | 2017.03.04 |
[단편] 숨겨진 유언 (0) | 2017.02.05 |
[단편] 친구, 사랑, 행복 (0) | 2017.01.25 |
[단편] 울분해소트럭 (0) | 2017.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