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옛 왕국의 수도.
수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큰 무덤이 있었다.
크고 작은 무덤이 모인 곳.
그 앞에는 작은 비석만이 남아있었다.
‘xx전쟁의 희생자들.’
‘x군의 병사들’
신원 미상의 병사들의 시체를 묻어둔 곳.
고아 병사, 노예병, 포로,
또는 심각하게 훼손된 시체를 모아
한꺼번에 큰 구덩이를 파서 묻어두는 곳.
신원을 알 수 없기에 그만큼 이를 찾는 이가 없었고
그에 따라 이곳은 떠돌이 짐승이나 까마귀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이들의 행렬이 무덤으로 향한다.
어둡고 칙칙한 무덤과는 어울리지 않는 깨끗한 옷을 입은 이들.
관리 받지 못해 이곳저곳에 잡초가 무성한 모습.
동물의 시체와 뼈가 여기저기 널린 곳.
이에 충격을 받은 이들 몇몇이 걷던 것을 멈춘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덤의 중심.
비어있던 공터에 구덩이를 파낸 이들은
나무로 된 하나의 관을 조심스럽게 묻었다.
신관으로 보이는 이가 낡은 성경을 꺼내 기도문을 읽고
주변의 이들은 고개 숙여 무덤에 묻힌 이를 애도했다.
아무도 모르는 병사들이 묻히는 무덤,
그곳에 묻히길 원한 한 기사의 유언.
그의 유언에 따라 그는 모두가 외면한 무덤에 묻히게 된다.
이후로 그의 유언을 기억한 기사들이 하나 둘 무덤에 묻히고,
잡초와 동물의 사체만 있던 무덤에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모이며
이전의 칙칙하고 어둡던 모습에서 깨끗한 모습으로 변한다.
무덤에 처음으로 이름을 가지고 묻힌 이.
적으로부터 왕국을 수호한 기사.
그의 마지막 유언.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나라가 존재한다.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수많은 얼굴, 체형을 가진 그들.
우리는 그들을 일반 병사라고 부르고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묵묵히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적들에 맞서고 나라를 구하고자 노력한다.
강력한 힘과 기술로 적들을 상대하는 기사,
화려함 뒤에 숨겨진 파괴력을 가진 마법사,
아무도 생각 못한 전술전략을 가진 전략가....
어찌 그들만으로 어찌 왕국을 지키겠는가?
그들을 보호하고 보좌하며 앞장서서 맞서는 병사들이 있기에
그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고 지금의 우리의 나라가 있는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난 그저 작고 하찮은 전술과
알량한 검술로 적 몇을 죽인 놈일 뿐.
나의 안정을 위해 병사들을 희생시켜 승리라는
아픈 결실을 맺었을 뿐이다.
내가 죽거든
그들과 같은 곳에 묻어주길 바란다.
죽음 뒤 그들의 앞으로 가 그들에 무릎 꿇고
그들에 용서를 구하며 말하리다.
우리의 나라를 지켜주어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랑스럽고 위대한 용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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